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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몽골과의 전쟁 13세기 초 동아시아의 정세 몽골의 팽창: 13세기 초 오랫동안 부족 단위로 유목 생활을 하던 몽골족이 통일되고 국가를 형성하고 금을 공격하면서 북중국을 점령하였다. 금의 지배항 있던 거란족의 일부는 대요수국을 건국하였고, 여진의 잔여 세력이 두만강 지역에 동진 국을 건국하였다. 여 몽의 접촉: 거란족의 일부가 몽골에 쫓겨 고려에 침입해 왔으나, 제천 방면에서 김취려에게 대파당하였다. 이후 거란족이 다시 고려에 침입하였고, 고려군은 거란에 반격하여 강동성에서 포위하였다. 이때 거란족을 추격해 온 몽골 및 두만강 유역에 있던 동진 국의 군대와 연합하여 거란족을 몰아냈다. 분쟁: 몽골은 거락족을 토벌해 주었다는 구실로 고려에 지나친 고울을 요구하였고, 몽골 사신 저고여가 귀국길에 국경 지대에서 필살당하였다... 2022. 7. 9.
06. 무신 집권 무신정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이후 문벌 귀족 지배 체제의 모순은 심화되었고, 지배층은 이와 같은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정치적 분열을 거듭하였다. 이 당시에는 과거 제도를 무과를 거의 시행하지 않았고, 무신 최고 지위이니 상장군, 대장군이 3품에 불과했으며 군대의 최고 문신에 비해 무신이 차별대우를 받았다. 의종은 문신을 우대하며 무신을 차별하고 측근 세력을 키워 의존하며, 향락에 빠지는 등의 실정을 거듭하여 무신들의 불만이 커졌다. 무신들은 전시과 토지 분급이 문신보다 낮았고 군인전 미지급으로 인한 하급 군인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지배 체제의 모순이 정치적으로 폭발한 것이 무신 정변이었다.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 무신들은 의종의 보현원 행차를 기회로 정변을 일으켜 다수의.. 2022. 7. 9.
05. 고려의 문벌 귀족 사회 문벌 귀족 사회의 성립과 모순 성종 이후 중앙 집권적인 국가 체제가 확립됨에 따라 새로운 지배 세력이 형성되었다. 이들 중 여러 세대에 걸쳐 중앙에서 고위 관직자들을 배출한 가문을 문벌 귀족이라 부른다. 이들은 지방 호족 출신으로 중앙 관료가 된 계열과 신라 6두품 계통의 유학자들이었다. 문벌 귀족은 과거와 음서를 통하여 관직을 독점하고, 중서 문하성과 중추원의 재상이 되어 정국을 주도해 나갔다. 관직에 따라 과전을 받고 세습이 허용되는 공음전 등의 혜택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권력을 이용하여 불법적으로 개인이나 국가의 토지를 소유하였다. 가문과 문벌을 중시한 문벌 귀족들은 비슷한 부류들끼리 폐쇄적 통혼 관계를 형성하여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특히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어 외척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하.. 2022. 7. 7.
04. 고려의 대외관계 고려의 외교 정책 북진 정책과 친송 정책: 태조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려는 북진 정책을 추진하였다. 서경을 북진의 전진기지로 개척하고 거란에 강경한 대응을 하였다. 이 당시 송나라는 문치주의로 인한 국방력 약화로 인하여 고려와 제휴하여 거란을 견제할 목적이 있었고, 고려는 송과 제휴하여 거란을 견제하는 정책을 폈으나. 송의 군사적 제의에는 응하지 않았고, 주로 경제적 문화적 목적으로 송과 교류하였다. 정안국의 등장: 발해가 멸망한 뒤 유민들은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고구려가 일어났던 압록강 주요 지역에 정안국을 세웠다. 정안국은 송과 연합하여 거란 협공을 시도하였으므로, 거란은 정안국 문제를 먼저 처리하여야 했다. 거란의 침입과 격퇴 거란의 1차 침입: 10세기 초에 통일된 국가를 세운 거란은 송을 공.. 2022. 7. 6.